AI보다 무서운 고시가 논란…계란 한 판에 번지는 불신
경남도, 지난해 밀양 공판장으로 지역 대안 모색 중

‘계란값’이 다시 밥상머리 민심을 흔들고 있다.
코로나19 당시 두 배에 가깝게 가격이 치솟으며 ‘금란’이라 불리던 계란값은 이후 계속 소비자가격 6천원~7천원 대 이상을 유지해오고 있다. 외부 요인에 따라 가격이 오른 적은 있지만 내린 적은 없어 보인다. 체감물가로 시장 상황을 잘 보여주는 지표로도 활용되는 계란값에 무슨 문제가 있는걸까?
최근 3년간 계란값은 널뛰기를 거듭해왔다. 2022년과 2023년에는 특란 10개 기준 산지가격이 1,600원 초중반대를 유지했지만, 2025년 5월에는 1,838원까지 치솟으며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출처=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 통상 여름철은 수요가 줄어드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반등한 이유는 무엇일까.
AI·전염병·미국 수출 증가…복합 요인에 가격 ‘비상’
전문가들은 계란값 급등은 공급 측 요인과 유통 구조의 불균형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올해 3월 이후 충청권을 중심으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데다, 환절기성 가금 질병까지 겹쳐 산란계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졌다. 특히 전염성 기관지염(IB)과 가금티푸스 유행으로 산란율이 80% 초반까지 하락하며 수급이 불안정해졌다는 것이 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이다.
이 와중에 생산자 단체인 대한산란계협회가 3월 말부터 산지가격을 개당 190원으로 약 30% 인상 고시하면서, 가격 상승세에 기름을 부었다. 협회 측은 AI 확산, 미국 수출 증가, 사육비용 증가 등을 인상 배경으로 들었다.
같은 시기 브라질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확산되며 미국 등 일부 국가의 공급 차질과 가격 변동이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브라질산 계란을 수입하지 않고 있으며, 최근 5년간 수입 실적도 전무해 이번 가격 급등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국내 생산 마릿수와 사료비가 오히려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어, 협회가 주장하는 인상 원인은 계란값 급등의 근거로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산란계협회의 고시가격이 여전히 시장가격 형성에 과도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농림축산식품부 발표 참조)

공판장 확대·수입 확대·담합 조사
정부는 최근 계속해서 계란값이 논란이 되자 진화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6월 들어 전국 계란 공판장 운영을 확대하고, 생산자단체의 고시가격 관행을 없애는 구조 개편에 착수했다.
박범수 농식품부 차관은 지난 13일 경기도 한국양계농협 계란 공판장 현장 조사에서 “가격 형성의 투명성을 높이고 실거래 중심의 유통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축산물품질평가원이 실거래 가격을 조사·발표하며, 중간 유통과정의 불투명성을 줄이는 방안이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계란 가공품에 대한 수입 물량을 연간 4천 톤에서 1만 톤으로 확대하고, 대형마트에 납품단가 인하와 할인 행사 참여를 유도해 소비자 부담을 낮추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더불어 지난 16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산란계협회 본부와 경기·충남 지회 등 3곳에 조사관을 보내 현장조사 및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지난 3월 산지가격(개당 146원→190원)을 회원 농가에 강제적으로 따르게 해 가격을 끌어올린 ‘담합 의혹’에 대한 조치였다. 조사 결과에 따라 엄정 조치하겠다는 입장이다.
경남도 “유통 투명화와 AI 방역 강화로 대응”
경상남도는 물가안정 상황실을 가동해 계란을 포함한 주요 품목을 물가 관리 중점 대상으로 지정해 대응해오고 있다. 시군 단위로 물가 모니터 요원을 운영하며 이상징후를 조기에 감지하고, AI 차단 방역도 강화했다.
특히 지난해 11월 개장한 ‘밀양 계란공판장’은 경남지역 유통구조 개선의 시금석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공판장은 산란계 농가들이 직접 가격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로, 계란 가격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시도다. 도는 이와 함께 계란 소비촉진 행사, 안전성 검사 강화 등 다각적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고시가 아닌 거래가로”…근본적 구조개선 필요
계란값이 매번 널뛰기를 반복하는 것은 유통 시스템의 왜곡과 정책 한계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단기 대응으로 수입 확대나 할인 행사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가격 결정 구조를 투명하게 만들고 공판장을 통한 실거래 중심의 유통 체계를 정착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협회 등 특정 단체가 시장가격을 좌우하는 구조가 계속된다면, ‘계란값 논란’은 해마다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식품부 공식 보고서에서 드러난 유통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현재 계란값이 높은 것은 사실이나 수년 째 인상 추세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유통구조 개선과 같은 구조적 개선이 다시금 주목받는 것으로 보인다.
계란 한 판 가격은 시장의 건강성을 비추는 거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인위적 가격 조절’이 아닌 ‘구조적 공정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