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군 음식물 처리기 방치, ‘유명무실’…주민 불만

“설치만 하고 방치”…주민 불편 호소

경남 지역은 2010년대 초반부터 음식물 폐기물 종량제 처리에 RFID(무선주파수식별) 방식을 도입해왔다. 2015년 이후 군·구 단위로 확대되며 음식물 쓰레기 감량과 환경오염 방지를 목표로 추진된 이 사업은 하동군에서도 활발히 진행됐다.

하동군 자원순환과에 따르면 현재 하동군에는 총 49대의 RFID 음식물 종량제 처리기(이하 종량제 처리기)가 운영 중이며, 주로 하동읍 등 읍 단위 공동주택을 중심으로 설치돼 있다.

하동군 북천면 하동IC 인근에 설치된 종량제 처리기. 고장난 채 오래 방치된 상태로, ‘공사중’ 표지가 붙어 있다.

기대와 달랐던 RFID 종량제 처리기

RFID 방식은 사용자가 카드나 칩을 구매해 폐기량에 따라 요금을 납부하는 시스템으로,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고 환경오염을 방지하는 효과가 기대됐다. 특히, 버린 만큼만 요금을 부담할 수 있고 들짐승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 음식물 쓰레기 수거차가 운행되지 않는 읍·면 지역에서도 깨끗하고 편리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민들의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읍·면 단위의 고령화된 주민들은 복잡한 사용법에 적응하기 어려워했고, 원격지에서는 기기 유지 관리의 어려움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지난달 주민 제보를 받고 찾아간 하동군 북천면 하동IC 인근의 종량제 처리기 현장은 이러한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해당 처리기는 작동을 멈춘 지 오래된 상태로 배출장소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공사중’이라는 표지판만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약 2주 후인 10일 이곳을 다시 방문했으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처리기는 여전히 방치된 채였다.

인근 상가에서 만난 A씨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 기계는 설치된 지 1년이 넘도록 방치돼 있다. 초기에 몇 번 사용해보다가 고장이 나서 신고했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며 “지금은 그냥 기존 방식으로 음식물을 처리하는데, 가장 불편한 건 고양이나 들짐승이 비닐을 뜯어서 주변을 어지럽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깨끗하자는 취지로 설치한 기계가 오히려 골칫거리가 됐다”고 덧붙였다.

음식물종량처리기와 재활용배출, 종량제 쓰레기 봉투 배출이 함께 이뤄지는 배출장소.

부실한 관리와 주민 불만
용역받은 업체 관리는 누가?

하동군 자원순환과 담당자는 전화 인터뷰에서 “종량제 처리기는 군이 전문 업체에 용역을 맡겨 유지·보수를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처리기의 고장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며 “현황을 즉시 확인하고 시정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군이 업체에 유지·보수 업무를 전적으로 위탁한 채 현장의 실태를 점검하지 않은 점은 이번 사례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점이다. 주민들은 “군이 설치에만 열을 올리고 사후 관리는 소홀하다”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RFID 종량제 처리기의 단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고령 주민들이 RFID 카드 사용법을 익히는 데 어려움을 겪고, 기기 고장 시 신속한 수리가 이뤄지지 않는 점은 사업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 또한, 처리된 음식물 쓰레기의 퇴비화나 사료화 같은 자원화 연계가 미흡해 환경적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종량 처리기가 설치된 다른 지역 주민은 “기계를 설치해놓고 홍보나 교육은 부족하고, 고장 나도 방치하니 쓰레기 감량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RFID 음식물 종량제 처리기 사업은 환경 보호와 주민 편의를 목표로 시작됐지만, 운영과 관리의 허점으로 인해 그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 전문 업체에만 의존하지 않고, 군이 직접 현황을 점검하고 주민 의견을 반영한 개선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이 사업은 ‘설치만 하고 방치된’ 상징물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하동군은 주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관리와 투명한 운영을 통해 사업의 본래 목적을 살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