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통 리더십 정영란 의장, ‘최초’ 타이틀보다 ‘이것’ 중요

지난해 7월 남해군의회 제9대 후반기 의장으로 취임한 정영란 의장은 “배가 항구에 머물 때는 안전할지 몰라도,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라는 신념으로 쉼 없이 달려왔다. 2018년 제8대 비례대표로 시작해, 제9대 후반기 의장으로서 소통과 현장 중심 의정으로 남해의 미래를 여는 정영란 의원은 오늘도 발로 뛴다. 의장 임기 절반을 지나온 7월 말, 내년 지방동시선거를 1년 여 앞둔 시점에서 정영란 의장을 남해군의회에서 만났다. 남해군의 미래와 의회 역할에 대해 폭넓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편집자 주>

평소 활력 넘치는 정영란 의장의 활동 근간에는 ‘항구에서 안전한 배가 되느니 풍랑 이는 바다로 나가는 배가 되겠다’는 신념이 담겨있었다. 지난 28일 남해군의회 의장실에서 만난 정영란 의원에게서 다양한 이슈에 대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현장 중심 의회 지향, 군민의 목소리를 품다


정영란 의장은 1년간의 의장직 수행을 돌아보며 남해군의회의 강점으로 ‘현장 중심’과 ‘소통’을 꼽았다. 복잡하게 얽힌 민원이나 첨예하게 대립하는 의견들도, 일방적인 해결책 제시보다는 “마주 앉아 대화할 수 있게 유도하고 양쪽 의견을 들어주다 보면 합의점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때로 어색하고 팽팽한 긴장이 흐르는 자리에서도, 누군가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만으로 분위기가 누그러지곤 한다는 것이다.

“의회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는 정 의장, 군민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도 때로는 직접 현장을 찾아 해결의 실마리를 모색한다. 특히 기억에 남는 성과로 남해읍에서 이동면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 전봇대 철거 사례를 들었다. “주민설명회 없이 설치된 150여 개 전봇대가 경관을 해친다는 민원에, 의회가 한전과 협의해 복구 약속을 받아냈다. 발로 뛰는 의회의 가치를 보여준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현장 중심, 소통하는 의정 활동은 정 의장이 추구하는 리더십의 핵심이다.

산업기반 없는 남해군, 훼손없이 관광산업 나갈 방향

산업 기반이 부족한 남해군에서 관광은 지역 경제 활성화의 핵심 동력이다. 남해군 관광산업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 정 의장은 “대규모 토목사업에 의존하기보다 남해의 자연 자원을 활용한 지속 가능한 관광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남해군의회 연구단체 ‘남해군 연실회’는 올해 연구 주제를 해양관광 활성화에 두고 방안을 모색 중이다.

정 의장은 “다이어트센터와 문학관 등 관광 기반을 이미 조성해 놓은 조도, 호도, 노도와 같은 유·무인도를 해상택시로 연결하는 ‘섬 투어’ 프로그램, 세존도를 불교 성지로 테마화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며, 경관 보존과 경제 활성화를 조화시키는 실용적 전략을 제시했다.

이런 접근은 남해대교 관광자원화 사업에서도 이어진다. 정 의장은 “무산될 뻔했던 사업을 2022년 군정질문을 통해 방향성을 제시하며 살려낸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 사업은 경남도의 해안권 및 내륙권 개발사업에 포함되며 본궤도에 올랐다. 그는 “남해대교가 남해의 대표 관광 자산으로 자리 잡도록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지원할 것”이라며, 지역 랜드마크로의 가능성도 점쳤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에 실용적 해법
‘산업, 교통은 빌리고 주거는 남해서’

남해군 인구는 최근 3만 명대로 줄어들며 고령화와 인구 감소 문제가 심각한 과제로 떠올랐다. 지난 1월에 참석한 ‘군민과의 대화’에서 고령의 한 이장이 ‘몇 년 만에 아이 울음소리를 처음 들었다’며 감격하던 모습은 정 의장에게 인구감소와 고령화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장면으로 기억된다. 군민이자 의장으로서 고민이 깊어지는 지점, 정 의장은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간다.

특히, 남해-여수 해저터널 사업과 국도5호선 남해안 연결 등이 남해군 인구 문제 해결의 핵심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었다. 정 의장은 “해저터널이 개통되면 여수와 광양의 산업단지로 출퇴근이 쉬워져 젊은이들에게 일자리 기회가 생길 것”이라며, “남해에 정주 단지를 조성해 여수에서 일하고 남해에서 거주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동과 광양 사례를 참고한 실용적 접근으로, 하동이 광양제철 출퇴근자들로 인구가 늘어난 점을 벤치마킹한 아이디어다. 이처럼 정 의장은 해저터널로 인한 이른바 ‘빨대효과’를 우려하는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해저터널이 남해에 가져올 경제적 기회를 낙관하고 있었다.

소통 기반 견제와 협력 관계 지향


이 외에도 일자리 창출, 정주여건 개선, 교육 환경 강화 등을 핵심 대책으로 꼽으며 의회가 집행부를 견제하면서도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협력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집행부와의 관계 뿐 아니라 의원 간에도 정당 대결 구도 보다는 남해를 위한 결정에 더 우선해주셔서 원활한 의정활동이 가능하다. 소통 의정에 공감해주신 덕”이라고 말했다. 평소 의원 간 뿐만 아니라 집행부 실무자, 수장인 군수와도 때로 격없는 소통을 하고 있어 가능한 일이다.

지난 18일 도시재생 전락계획 변경 및 활성화 계획 수립을 위한 주민공청회에 참석, 발언 중인 모습(사진출처=남해군의회 누리집)

부담스런 타이틀 ‘최초 여성 의장’ 딛고
‘최초’ 넘어 ‘최고’로, 끊임없는 다짐


비례대표 의원으로 활동한 지난 8대 남해군의회 당시, 여성 의원은 정영란 한 사람뿐이었다. ‘여성 의원’이라는 정체성은 그에게 특권이 아닌 압박이었다.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 속에서, 그는 “여자라고 다르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다잡아야 했다.

“의례 상 애국가 부를 때 남자 의원들 틈에 섞여서 같이 부르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목소리 톤이 남자들하고 똑같이 돼버렸더라. 내 목소리가 튀면 안 될 것 같았는지, 목소리를 죽이고 있었다”

남성들 사이에서 자기 목소리를 감추려 애쓰며 “배추벌레가 변색하듯, 나도 변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런 그가 9대 의회에서 남해군의회 최초 여성 의장에 올랐다. 그러나 ‘최초’라는 단어는 영예와 동시에 막중한 책임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정 의장은 ‘최초’에 머물지 않았고 오히려 ‘최초’를 ‘최고’로 바꿔야 한다고 다짐했다. 단지 여성이라서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 실제 리더십으로 평가받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래서 제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최초를 최고로 만들어야 한다’. 그냥 최초에서 머물면 안 된다고”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 의장은 한 번 더 군의원 도전을 고민 중이다. “의원으로서 활동을 좋게 평가해 주시며 한 번 더 해보라는 격려도 많다”며, 남해 발전을 위해 더 뛰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어 “남해군의회가 다른 지자체보다 효율적이고 융통성 있게 운영되고 있다고 자부한다. 정책지원관 충원, 의정활동지 발간 두 가지 약속을 지켰으니 앞으로 1년 동안 의회 인사권 독립 약속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고, 손과 발이 되어 움직이는 열린 의회가 되겠다. 집행부와 의회가 쌍두마차를 이끄는 준마가 될테니, 군민 여러분은 변함없이 응원해주시고 관심을 가져달라”는 당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