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독서] “선동은 쉽고 민주주의는 어렵다”…로버츠 밀러

“민주주의를 오염시키는 선동의 수사학”
로버츠-밀러 교수, 정치 현실 뒤돌아 보게 만든 균형감 있는 시각

‘선동은 쉽고 민주주의는 어렵다'(패트리샤 로버츠-밀러, 옮긴이 김선, 출판사 힐데와소피)

패트리샤 로버츠-밀러(Patricia Roberts-Miller)의 『선동은 쉽고 민주주의는 어렵다』(옮긴이 김선, 원제: Demagoguery and Democracy, 2017)는 현대 민주주의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협 중 하나인 선동 정치의 본질을 예리하게 분석한 저작이다.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의 수사학, 작문학 교수인 저자는 수사학적 관점에서 선동의 메커니즘을 해부, 민주주의 사회가 어떻게 이 위험에 대처해야 하는지 제안한다.

선동가는 문제를 ‘우리 vs 그들’ 구도로 본다
“…그들은 선동가에게 속고 있는 것이 자신들이 아니라 우리라고 생각한다”

로버츠-밀러는 이 책에서 ‘선동가’를 “모든 문제를 ‘우리 대 그들’의 구도로 축소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복잡한 정치적 현실을 단순화하여 대중의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만, 결과적으로는 합리적 토론과 숙의 과정을 파괴한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선동을 단순히 부정적인 현상으로만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선동을 “늘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언제나 좋은 것도 아니다”란 균형잡힌 시각에서 바라본다. 선동이 때로는 사회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선동이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다원성과 토론 문화를 침식시킬 때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을 돌아보면 이 책의 메시지가 특히 절실하게 다가온다.
정치적 이슈를 극단적인 진영 논리로 치환하고, 상대방에 대한 악마화를 일상화시키는 정치행위가 만연할수록 합리적이고 정당한 목소리는 점점 설 자리를 잃는다. 복잡한 정책 문제들을 감정적인 구호로 단순화시키면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혹은 이해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은 일방적인 주장에 쉽게 경도되고, 흑백논리는 더욱 견고해진다.
사실보다는 편견과 선입견이 여론을 좌우하는 현상이 가속화되는 것이다.

로버츠-밀러는 선동의 패턴이 놀라울 정도로 예측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선동가들은 위기 상황을 조성하고, 특정 집단을 희생양으로 지목하며, 자신들만이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사실 확인이나 증거 제시보다는 감정적 호소와 두려움 조장이 우선시된다. 이러한 패턴을 이해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들이 선동적 언어에 현혹되지 않고 비판적 사고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추천? 비추천?

이 책은 정치인뿐만 아니라 언론인, 교육자, 그리고 모든 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가이드북이 될 수 있다. 특히 소셜미디어와 AI 시대에 가짜뉴스와 편향된 정보가 빠르게 확산되는 현실에서 ‘선동’과 ‘합리적 담론’을 구별하는 능력은 생존을 위한 필수 역량이다.

퇴근 후나 주말, 시간을 내 한번에 읽어 내려가기 좋게 분량도 140여 페이지에 불과하다. 난해한 수사학, 전문용어가 드물고 흥미로운 역사적 사례도 등장해 술술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답답한 현실 정치판을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보고자 한다면 추천한다.

*이 기사는 본지 기획 ‘주말엔독서’ 일부이며, ‘주말엔독서’ 기획은 저자 또는 출판사와 협의-협찬없이 편집부가 임의 선정한 도서를 대상으로 합니다.